성수동 완벽 가이드 2025: 서울의 브루클린이 된 구두 공장 거리
2020년 봄, 나는 처음 성수동에 발을 디뎠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를 나오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예상 밖이었다. 낡은 철골 건물과 녹슨 셔터가 내려진 공장 사이로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여기 10년 전만 해도 구두 공장 천지였는데..." 옆 골목 철물점 주인의 말이 성수동의 변화를 요약한다. 서울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도시 재생이 일어난 곳. 이곳은 단순히 트렌디한 카페가 모인 동네가 아니다. 산업 유산과 현대 감성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서울의 브루클린이다.
구두 공장이 카페가 되기까지
성수동의 이야기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곳은 서울의 경공업 중심지였다. 특히 구두와 가죽 제품 제조업으로 유명했다. 좁은 골목마다 재봉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장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이 변했다.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2010년, 성수동은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였다. 빈 공장과 낮은 임대료. 그때 젊은 예술가와 창업자들이 이곳을 발견했다.
2015년, 카페 어니언이 옛 금속 공장 건물에 들어섰다. 녹슨 철골과 콘크리트 바닥을 그대로 살린 이 카페는 성수동 변화의 상징이 됐다. "공장을 부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당시 오픈을 도왔던 디자이너의 말이다.
그 후 대림창고,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서울브루어리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모두 옛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공간이었다. 2018년부터 언론이 성수동을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도 성수동은 성장했다. 넓은 공간과 야외 좌석이 많아 안전했기 때문이다.
2025년 현재, 성수동은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데이트 코스다. 주말이면 카페마다 대기 시간이 1시간을 넘는다. 하지만 조금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70년 된 구두 공장이 운영 중이다. 이 공존이 성수동을 특별하게 만든다.
성수동의 세 얼굴
성수동을 이해하려면 세 구역을 알아야 한다. 각각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성수 카페거리 - 모든 것이 시작된 곳
성수역 3번 출구에서 서울숲 방향으로 이어지는 왕십리로 일대가 이른바 '성수 카페거리'다. 가장 유명한 카페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카페 어니언 성수점이 이 거리의 시작점이다. 아침 8시부터 문을 여는데, 주말엔 9시면 이미 줄이 길다. 팬도로 한 조각에 7,000원. 비싸지만 그 설탕가루 산을 한 번 보면 이해한다. 공장 특유의 높은 천장과 노출 벽돌이 인스타그램에 안 나올 수가 없다.
건물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5to7 성수가 있다. 이름처럼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 골든아워를 즐기기 좋은 카페다. 루프탑 테라스에서 보는 노을이 일품이다. 핸드드립 커피 한 잔에 8,000원. 여기는 커피 맛으로 승부한다.
연무장길 - 로컬들의 성수동
성수역 1번 출구 쪽은 관광객이 덜 찾는다. 이 일대가 진짜 로컬 성수동이다. 여전히 철공소와 자동차 정비소가 운영 중이고, 그 사이사이 작은 카페와 식당이 숨어 있다.
지크커피 성수점는 동네 주민들이 매일 찾는 곳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커피가 정직하다. 아메리카노 4,500원. 아침 7시부터 여는데, 출근 전 테이크아웃하는 이들로 붐빈다. 자리는 6개뿐이다.
점심 시간엔 소문난 성수 감자탕으로 가자. 1988년부터 한자리에서 영업한 노포다. 큰 뼈 하나가 통째로 들어간 감자탕 한 그릇 13,000원. 이 집 단골은 대부분 근처 공장 사장님들이다. "손님들 입맛이 까다로워요. 40년 하면서 맛 못 지키면 남을 수가 없죠." 2대째 이어가는 딸의 말이다.
성수 서쪽 - 뉴웨이브가 밀려오는 곳
뚝섬역 쪽으로 가면 성수동의 미래가 보인다. 최근 2-3년 새 오픈한 공간들이 여기 모여 있다.
대림창고는 1970년대 정미소를 갤러리와 카페로 바꿨다. 붉은 벽돌 건물과 철골 기둥을 그대로 살렸다. 2층 갤러리에서는 매달 다른 전시가 열린다. 입장 무료. 1층 바에서 와인 한 잔 마시며 건축 디테일을 구경하는 게 정석이다. 평일 오후 3-5시 사이가 가장 한적하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성수점은 성수동 크래프트 비어 신의 시작이다. 탱크가 보이는 양조장 겸 펍이다. IPA부터 스타우트까지 자체 양조 맥주 10종 이상. 파인트 한 잔 9,000-12,000원. 금요일 저녁 6-8시 사이 해피아워 있다. 이때 오면 30% 할인에 양조사와 대화도 가능하다.
내가 계속 돌아오는 이유
성수동을 20번 넘게 방문하면서 찾은 나만의 루틴이 있다.
토요일 아침 루트
오전 10시 전 성수역 도착. 아직 관광객 물결이 밀려오기 전이다. 지크커피에서 핸드드립 한 잔 테이크아웃(20분 대기 각오). 커피 들고 성수동2가 골목길 산책. 여기는 아직도 70년 된 구두 공장이 곳곳에 있다. 토요일 아침엔 문 닫았지만 건물 자체가 사진 명소다. 녹슨 철문, 벽에 붙은 옛 간판들, 적산가옥 스타일 목조 주택. 성수동의 진짜 얼굴을 보려면 이 시간대다.
11시쯤 카페 어니언 도착. 이미 줄이지만 아직 감당 가능한 수준이다. 팬도로와 플랫 화이트 주문. 2층 창가 자리 선점하면 대박이다. 여기서 아래 거리 구경하며 2시간 보낼 수 있다.
평일 오후 추천
평일 오후 2-4시가 성수동의 골든타임이다. 점심 러시 끝나고 저녁 전 짧은 휴식 시간. 이때 카페마다 자리 있다.
대림창고 갤러리 관람 후(30분) 1층 바에서 에스프레소 마티니 한 잔. 어메이징브루잉으로 이동해 투어 신청(무료, 평일 3시 진행). 양조 과정 설명 듣고 시음. 5to7 루프탑으로 이동해 해질녘까지 대기. 성수동에서 보는 노을은 한강 못지않다.
저녁 데이트 코스
금요일 저녁 7시, 서울브루어리 성수에서 시작. 이 시간이면 해피아워 막바지다. 크래프트 비어 2잔 주문. 야외 테라스 자리 잡으면 성수동 밤 분위기 느낄 수 있다.
8시쯤 연무장길로 이동. 여기는 밤이 되면 조용해진다. 작은 와인바나 이자카야가 몇 군데 있다.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매력이다. 동네 분위기 그대로 유지하면서 와인 한 잔 즐기는 곳들이다.
성수동, 제대로 즐기는 법
5년간 성수동 다니며 터득한 팁들이다.
타이밍이 전부다
주말 오전 9시 전: 카페 대기 없이 입장 가능. 사진도 한산하게 찍을 수 있다.
평일 오후 2-4시: 성수동의 스위트 스팟. 점심 손님 빠지고 저녁 전. 카페도 식당도 여유롭다.
금요일 저녁 6-8시: 어메이징브루잉, 서울브루어리 등 양조장 펍 해피아워. 분위기 좋고 가격 착하다.
일요일 저녁 6시 이후: 주말 관광객 빠진 후 동네가 고요해진다. 진짜 로컬 성수 보려면 이때다.
계절별 베스트 시즌
봄(4-5월): 서울숲 벚꽃 보고 성수동 카페 투어. 날씨 좋아 야외 테라스 만석.
여름(7-8월): 루프탑 카페가 빛난다. 5to7, 글로우 성수 등 옥상 있는 곳 추천.
가을(10-11월): 성수동의 진짜 시즌. 날씨 완벽하고 공장 건물이 가을빛과 어울린다.
겨울(12-1월): 실내 카페가 강점. 히터 빵빵한 창고 카페에서 따뜻하게.
성수동 생존 가이드
대기 앱 활용: 인기 카페는 캐치테이블, 네이버 예약 필수. 현장 가서 줄 서면 1-2시간 기본이다.
주차는 포기: 성수동은 주차 지옥이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이 답이다. 3번, 1번 출구 위치 파악이 핵심.
골목 탐험 필수: 메인 스트리트만 보고 가면 반밖에 못 본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진짜 성수 나온다.
현금 챙기기: 작은 가게들은 카드 안 되는 곳도 있다. 현금 3-5만 원 준비.
편한 신발: 성수동은 걸어야 한다. 하루 2-3시간 걷는 게 기본이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주말 점심 시간 피하기: 토-일 12-2시는 최악의 타이밍. 어디든 대기 1시간 이상.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기: 성수동은 넓다. 한두 카페만 가고 끝내면 아깝다.
구글맵 믿지 않기: 골목길 정보는 네이버 지도가 정확하다.
비 오는 날 피하기: 야외 공간이 많아서 비 오면 선택지가 확 줄어든다.
변화하는 성수동, 그리고 미래
2025년 성수동은 기로에 서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
"임대료가 3년 새 3배 올랐어요." 초창기 입주한 카페 사장의 말이다. 큰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작은 가게들이 밀려나고 있다. 2020년에 있던 독립 카페 중 절반이 이미 문을 닫았다.
공장도 사라진다. 2024년 한 해만 5개 구두 공장이 폐업했다. "후계자가 없어요. 우리 아들은 이 일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60년 된 제화공의 말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남아있는 것들
하지만 성수동은 끈질기다. 주민들과 초창기 입주자들이 '성수동 정체성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다. 2023년 성동구와 함께 만든 '성수동 헤리티지 맵'이 그 결과다. 보존해야 할 공장 건물 50곳을 지정했다.
새로 들어오는 가게들도 달라졌다. 단순히 트렌디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건물 역사를 존중하는 리노베이션이 늘었다. LCDC서울, 어니언팩토리 등이 좋은 예다.
5년 후 성수동
개인적 예측으로는, 성수동은 두 갈래로 나뉠 것 같다.
메인 스트리트: 대형 브랜드와 프랜차이즈가 장악. 관광객 중심 상권. 홍대나 강남 가로수길처럼 변할 확률 높다.
골목 안쪽: 진짜 로컬들의 성수. 작은 가게와 공장이 공존하는 공간. 아는 사람들만 찾는 숨은 명소들.
지금 성수동을 보러 가야 하는 이유다. 변화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이 순간이, 가장 성수동다운 때일지 모른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수동 처음인데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요?
성수역 3번 출구 나와서 카페 어니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세요. 이 길이 성수동의 메인 스트리트예요. 카페 어니언 → 대림창고 → 어메이징브루잉 순서로 도는 게 기본 코스입니다. 3-4시간 잡으면 충분해요.
Q: 혼자 가도 괜찮은가요?
완전 괜찮아요. 오히려 혼자 가면 자유롭게 골목 탐험하기 좋습니다. 카페들도 1인 테이블 많고요. 평일 오후 추천합니다.
Q: 얼마나 예산 잡아야 하나요?
카페 2-3곳 + 식사 기준으로 1인 4-5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카페 음료 평균 7,000원, 식사 평균 12,000-15,000원 정도예요.
Q: 아이와 함께 가도 되나요?
가능은 하지만 추천은 안 해요. 계단 많고 좁은 공간 위주라 유모차 다니기 힘듭니다. 그리고 카페들이 조용한 분위기 중시해서 어린 아이 데리고 가면 눈치 보일 수 있어요.
Q: 연남동이랑 뭐가 다른가요?
연남동은 주거지 느낌의 동네 카페 중심이고, 성수동은 산업 유산을 활용한 대형 공간 위주예요. 연남동이 아늑하고 편하다면 성수동은 넓고 드라마틱해요. 인스타그램 사진은 성수동이 더 잘 나와요.
Q: 주차 가능한가요?
거의 불가능합니다. 골목길이 좁고 주차장 턱없이 부족해요.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이용이 답입니다. 꼭 차로 가야 한다면 서울숲 공영주차장 이용하고 걸어오세요.
성수동, 나의 시선으로
성수동을 처음 발견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이 동네는 계속 변했다. 어떤 건 좋아졌고 어떤 건 아쉬워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성수동은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정직한 도시 재생의 현장이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있던 걸 살려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곳. 70년 된 공장 건물 옆에 2025년 오픈한 카페가 어색하지 않게 서 있는 곳. 과거와 현재가 싸우는 게 아니라 대화하는 곳.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지난주 화요일이었다. 연무장길 어느 철공소 앞을 지나가는데 70대로 보이는 사장님이 쇠를 다듬고 계셨다. 바로 옆 건물에는 20대 바리스타가 라떼아트를 그리고 있었다. 그 순간이 성수동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 풍경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 성수동을 보러 가야 한다.
이 가이드는 2025년 12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성수동은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이므로 방문 전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