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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예술촌 가이드 2025: 철공소가 만든 서울의 몽마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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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예술촌 가이드 2025: 철공소가 만든 서울의 몽마르트

낡은 철공소가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변신한 문래동의 이야기. 용접 불꽃 옆에서 피어난 카페, 갤러리, 그리고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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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사진과 내러티브 저널리즘으로 서울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는 도심 탐험가

문래동 예술촌 가이드 2025: 철공소가 만든 서울의 몽마르트

2018년 가을, 나는 우연히 문래동에 발을 들였다. 영등포역에서 내려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녹슨 철문, 용접하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현수막. "도예 클래스," "목공 공방," "화가 아틀리에." 철공소가 모여 있던 동네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문래동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 못했다. 서울의 다른 힙한 동네와는 달랐다. 성수의 세련된 카페도, 익선동의 한옥 카페도 아니었다. 이곳은 살아있는 제조업의 냄새와 예술가들의 열정이 뒤섞인 곳. 용접 불꽃 옆에서 커피를 내리고, 철공소 옆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 이것이 문래동 예술촌의 매력이다.

공장 동네에서 예술촌으로

문래동의 이야기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다. 당시 영등포는 서울의 산업 중심지였고, 문래동은 그 중심에서 철공소와 금속 가공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좁은 골목마다 두드깨 소리, 용접 불꽃,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변화의 씨앗이 보였다. 임대료가 싼 곳을 찾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문래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공소 건물 2층을 작업실로 쓰는 화가, 폐공간을 갤러리로 만드는 조각가. 공장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문래동의 공장 건물과 갤러리가 공존하는 풍경

2000년대 중반부터 가속도가 붙었다. 2004년 문래동 예술촌이 공식적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계획된 문화 지구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공장주와 예술가가 이웃으로 살게 된, 서울에서 유일한 곳.

2010년대 들어 카페와 레스토랑도 하나둘 생겨났다. 하지만 성수나 익선처럼 대규모 개발은 없었다. 철공소 옆에 카페가 들어서고, 공방 앞에 벤치가 생겼을 뿐이다. 그래서 문래동은 여전히 낡은 공장 건물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문래동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

용접 불꽃과 캔버스

문래동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용접하는 장인 옆에서 스케치북을 펴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40년 된 철공소 건물 1층에서는 아직도 철을 깎고 용접한다. 그 바로 위 2층이나 3층에는 화가, 조각가, 도예가의 작업실이 있다.

한 번은 철공소 주인에게 물었다. "예술가들 옆에서 일하면 시끄럽지 않나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좋아요. 젊은이들이 오니까 동네가 살아있어 보이거든요. 작품 만드는 걸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이 공존이 문래동을 특별하게 만든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면, 건물 너머로 철공소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것은 성수의 세련된 공장 재탄생과는 다른 느낌이다. 문래동은 여전히 공장이 돌아가고, 그 옆에서 예술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골목마다 숨겨진 공방

문래동을 제대로 보려면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메인 도로만 보면 그저 평범한 주택가다. 하지만 골목 안으로 10미터만 들어가면 세상이 바뀐다.

문래동 골목에 숨겨진 작업실과 공방

도예 공방에서는 직접 만든 도자기를 굽는 클래스를 진행한다. 가죽 공방에서는 지갑과 벨트를 만드는 워크숍이 열린다. 목공 공방에서는 아이들이 의자를 만들며 나무를 깎는다. 이 공방들은 대부분 예약제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

문래동을 방문하는 나만의 팁: 골목 입구에 붙은 포스터를 확인하라. 공방 홍보 포스터, 전시 안내, 워크숍 모집 공고. 이것들이 문래동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지도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카페

문래동의 카페는 다른 동네와 다르다. 화려한 인테리어보다는 예술가들이 작업하다 쉴 수 있는 공간에 가깝다. 넓은 테이블, 조용한 음악, 그리고 오래 머물기 좋은 분위기.

문래동 핫플레이스

포엣룸(Poetroom) - 시인의 방

Poetroom은 문래동을 대표하는 카페다. 2016년에 오픈한 이곳은 철공소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이름처럼 시인이 쓰는 방 같은 분위기다.

포엣룸의 내부 공간

철골 그대로 노출된 천장, 낡은 벽돌,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빈티지 가구. 포엣룸은 문래동의 산업 유산과 예술적 감성을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아메리카노 5,500원. 가격은 착한 편이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분위기다. 카페 안에 앉아 있으면, 예술가들이 작업을 마치고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대개 노트북을 펴놓거나 스케치북을 꺼낸다. 포엣룸은 그런 예술가들의 거실 같은 곳이다.

포엣룸의 테라스 공간

주말 오후 2-4시가 가장 한적하다. 평일 저녁에는 예술가들이 모여 들리는 소리가 조금씩 늘어난다. 테라스에 앉아 문래동의 골목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문다.

폰트 카페(Pont Cafe) - 다리 위의 휴식처

Pont Cafe는 문래동 역 근처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공간이다. 'Pont'는 프랑스어로 다리라는 뜻이다. 카페 이름처럼, 이곳은 예술가와 일상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폰트 카페의 내부

폰트 카페의 특별 메뉴는 수제 케이크와 라떼. 케이크 한 조각 6,000원. 라떼 한 잔 5,500원. 가격대도 합리적이지만 맛은 정통이다. 주인장이 직접 만드는 케이크는 계절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봄에는 딸기 케이크, 여름에는 복숭아 타르트, 가을에는 호박 파이.

폰트 카페를 찾는 문래동 예술가들은 많다. 아침 일찍부터 노트북을 들고 오는 이들, 오후에는 스케치북을 펴는 이들. 이곳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공간이다.

폰트 카페의 조용한 분위기

베르데 커피(Verde Coffee) - 녹색의 안식처

Verde Coffee는 문래동의 숨은 보석이다. 작은 건물이지만, 마치 정원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Verde'는 이탈리아어로 녹색을 의미한다.

카페 앞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식물들이 가득하다.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녹색 식물들의 그림자, 그리고 그 사이로 향기로운 커피 냄새.

베르데 커피는 조용한 작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딱이다. 와이파이도 빠르고, 콘센트도 충분하다. 하지만 너무 조용해서 딴딴한 분위기는 아니다. 카페 주인이 음악 선정을 센스 있게 했다. 재즈, 클래식, 어쿠스틱 팝.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완벽하게 녹아든다.

문래동에서 하루 보내기

내가 추천하는 문래동 루트를 소개한다.

오전 10시 - 골목 탐험

영등포역 1번 출구로 나와 문래동 방향으로 걷는다. 지도를 보지 말고 골목으로 들어가라. 첫 번째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질 것이다. 철공소 소리, 용젃 불꽃 냄새,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갤러리 입구.

이 시간대가 문래동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공장들이 가동을 시작하고,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들어가는 시간. 동네가 깨어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점심 12시 - 공방 체험

미리 예약해둔 공방 클래스에 참여한다. 도예, 가죽, 목공 중 선택. 2-3시간 클래스 비용은 3-5만 원 선. 직접 만든 작품을 들고 갈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클래스가 없다면, 문래동 인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동네에는 오래된 라면 집, 분식집, 그리고 새로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공존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30년 된 라면 집이다. 공장주들이 점심을 먹으러 온다. 김치찌개 7,000원, 라면 5,000원. 진짜 로컬 맛이다.

오후 3시 - 카페 투어

Poetroom에서 오후를 시작한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 테라스에 앉아 문래동의 골목을 바라본다. 옆 건물에서 용접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문래동의 사운드트랙이다.

1시간쯤 뒤 Pont Cafe로 이동한다. 시간이 되면 케이크를 추가로 주문. 아니면 그냥 라떼만. 분위기를 즐기는 게 목적이니까.

늦은 오후에는 Verde Coffee로 향한다. 해가 질 무렵, 식물들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는 시간. 여기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저녁 7시 - 전시 관람

문래동에는 수많은 갤러리가 있다. 대부분 오후 6-7시까지 문을 연다. 시간이 된다면 작은 갤러리 2-3곳을 둘러보라. 무료인 곳이 많고, 유료라도 1-2만 원 수준.

현대 미술, 공예, 사진 전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 운영자는 예술가 본인인 경우가 많다. 작품에 대해 물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문래동, 제대로 즐기는 법

방문하기 좋은 날

화요일-목요일: 가장 한적하다. 골목 탐험하기 좋고, 카페도 자리 넉넉하다.

토요일 오후: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카페는 붐빌 수 있다.

첫째 셋째 토요일: 문래동 예술촌에서 정기 예술 시장을 연다.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판매한다.

알아두면 좋은 팁

예약 필수: 공방 클래스는 대부분 예약제. 방문 1주일 전에 문의해야 한다.

편한 신발: 문래동은 걸어야 한다. 골목길이 많고, 계단도 있다. 하이힐은 비추천.

현금 준비: 작은 공방이나 레스토랑은 카드 안 되는 곳도 있다.

대중교통: 영등포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주차는 어렵다.

용접 작업 주의: 골목을 걷다 보면 용접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추천 코스

2시간 코스: Poetroom → Pont Cafe → 골목 산책 → 갤러리 1곳

4시간 코스: 오전 골목 탐험 → 점심 식사 → 공방 클래스 → Poetroom → Pont Cafe → 갤러리 투어

종일 코스: 오전 공방 클래스 → 점심 식사 → 오후 카페 투어 → 저녁 전시 관람 → 문래 예술 시장(토요일)

문래동의 미래

2010년대 초만 해도 문래동은 "서울의 숨겨진 비밀"이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문래동을 소개하는 영상이 올라오고, 매거진에서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문래동은 성수나 익선처럼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공장이 돌아가고 있고, 그 건물주들은 대규모 재개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래동의 매력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천천히 변해서 옛 모습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너무 느리서 발전이 없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천천히 변하는 속도가 문래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공장주들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카페가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과정. 계획된 재개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진화.

Found during my morning walk through 문래동

"아저씨, 여기 철공소 언제 시작했어요?" "내가 젊어서요. 지금 40년 됐네." "주변에 카페랑 갤러리 많아졌는데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한 건 없어요. 젊은이들이 오니까 동네가 살 것 같아서 좋죠."

2024년 여름, 철공소 주인과 나눈 대화다. 그는 1970년대부터 이곳에서 철을 깎고 있다. 건물 2층에는 화가가 작업실을 쓰고 있다. 그들은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지만, 이웃처럼 지낸다.

문래동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상이다. 공장주와 예술가가 함께 하는 동네 축제, 골목에서 열리는 야외 전시, 공방 앞에서 펼쳐지는 작은 시장. 이것이 문래동의 진짜 모습이다.

성수의 화려한 패션, 익선동의 감성적인 한옥, 을지로의 레트로 감성. 이 모든 것이 트렌드지만, 문래동은 다르다. 트렌드를 넘어선, 예술과 제조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동네.

서울의 몽마르트. 철공소가 만든 예술촌. 문래동에서 용접 불꽃과 캔버스가 만나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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